대부분의 서구 지식인들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시초라고 말한다. 왜냐하면 헤로도토스가 B.C 425년 무렵에 쓴 [역사] 를 최초의 역사서로 보았기 때문이다.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헤로도토스가 최초의 역사서를 썻다고 인정하지 않는다. 어떤 학자들은 헤로도토스가 아니라 투키디데스를 “역사 서술의 창시자"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.
더 보기헤로도토스와 투기디데스는 하나의 전쟁을 다루었다. 그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,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, 다양한 사회 제도의 특성과 변화, 자기만의 색깔로 살다 죽은 개인들의 생애, 전설과 신화의 시대에서 한 왕조에 이르는 수천년 중국 사회의 역사 전체를 입체로 재구성했다. 최초의 인류사는 600년전 북 아프리카에 살았던 이븐 할둔(1332~1406) 에 의해 적혀졌다. 할둔은 문명을 환경의 산물로 간주하고 세게를 일곱 기후대로 나누어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인류사를 썻다
더 보기랑케가 문서보관소를 순례하며 과거를 ‘ 있었던 그대로' 보여주려고 애쓰던 바로 그 시기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른 시선으로 역사를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다. 그가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지나간 시대도 그 시대를 재구성한 문자 텍스트도 아니었다. 철학자의 임무는 세계를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무엇이며 어떤 조건을 충족할 때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는지 탐색한 끝에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 저네를 지배하는 역사법칙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
더 보기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역사가들은 크게 세 갈래로 열정을 표현했다. 첫째, 민족해방 투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일제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강점과정과 조선 사람들이 벌인 해방 투쟁을 세세히 기록했다. 두번째는 조선 사람들이 민족적 자부심과 자주성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과거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 했다.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어딘가 못난 점이 있거나 우리 사회와 역사가 스스로 발전 할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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